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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9일 월요일 05:46:01 KST 전체기사 공지 로그인 회원가입 로그인 한국어 ENG Deutsch Português 日本語

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기사입력 기사번호 6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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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화요일 · 오전판 · 🕙 10시 10분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프닝 – 10시 10분의 경성

1926년 11월 9일, 화요일 아침나절의 경성입니다. 이날 날씨를 적은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늦가을이라는 말만 적어 둡니다. 이날 하루의 큰 사건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닷새 전에 있었던 일과 엿새 뒤에 있을 일 사이에 선 경성 거리를 걸어 봅니다. 화요일의 눈으로 보면 법과 말, 그리고 신문과 극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100년 전 오늘 1926-11-09 당시의 장면을 재현한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그날의 경성 – 닷새 전, 한글에 이름이 붙은 날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11월 9일자 동아일보·조선일보 원문은 이번 조사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날 지면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확인되는 사실부터 적습니다.

닷새 전인 11월 4일은 음력 9월 29일이었습니다. 조선어연구회가 신민사와 함께 훈민정음 반포 480돌, 곧 여덟 회갑을 기리는 자리를 열었습니다. 장소는 서울 식도원이었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로 정했습니다.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 처음 생긴 것입니다.

이 날의 이름은 이후 여러 번 바뀝니다. 1928년에 ‘한글날’이 되었고, 1934년부터는 양력 10월 28일에 기념했습니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뒤 반포 시기를 다시 따져, 1946년부터 10월 9일에 기념합니다. 같은 날 시각장애인용 한글 점자 ‘훈맹정음’이 발표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다만 이 점자 기록은 한 매체의 보도라서 교차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그날의 사건 현장 분위기를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경성과 한반도 – 새 신문 하나, 그리고 법정의 그림자

엿새 뒤인 11월 15일, 경성 명치정(지금의 명동) 82번지에서 ‘중외일보’가 창간됩니다. 이상협이 발행권이 취소된 시대일보를 넘겨받아 이름을 바꿔 낸 신문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상협이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았고 자금은 백연기가 댔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목록에는 시대일보 발행 기간이 1926년 8월 31일까지로 올라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이끌던 민간지 시장에 세 번째 신문이 들어서는 셈입니다. 그 준비가 한창이던 때가 바로 이 무렵입니다.

법과 질서의 눈으로 보면, 그해 여름의 그림자가 아직 길었습니다. 6·10 만세운동에 나선 학생이 600여 명이었는데, 당국은 처음에 이들을 모두 가두려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재판에 넘긴 사람은 11명이었습니다. 운동을 큰 항쟁이 아닌 ‘사건’ 하나로 줄이려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고려대 소장 문서 목록에는 1926년 8월 10일 강달영 등 43명이 붙잡히고 60여 명은 잡히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두 건 모두 11월의 일은 아닙니다. 이날 법정과 경찰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그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그날의 세계 – 의석을 잃은 의원들, 런던의 회의

이탈리아에서는 11월 9일 하원이 야당 의원들의 의석을 박탈했습니다. 마테오티 살해 뒤 의회를 떠났던 ‘아벤티노 탈퇴’ 의원들이 대상이었고, 무솔리니 정부의 새 법이 면책특권을 없앤 뒤의 일이었습니다. 공산당 의원이던 안토니오 그람시는 11월 8일 밤에 붙잡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자료마다 체포 시각이 조금씩 다릅니다.

런던에서는 10월 19일부터 11월 23일까지 제국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영국과 자치령이 ‘지위가 같은 자치 공동체’라는 데 합의한 밸푸어 선언은 11월 15일에 승인됩니다. 중국에서는 장제스의 국민혁명군이 북쪽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12월에는 국민정부가 우한으로 옮겨 갑니다. 같은 제국의 시대에 한쪽에서는 식민지가 자치를 얻고, 한쪽에서는 의회가 입을 닫았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그날의 거리와 건물 풍경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경성 24시 – 화요일의 문화생활

이날 극장 풍경을 적은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달 남짓 전인 10월 1일, 종로 단성사에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했습니다. 개봉 첫날부터 사람이 몰려 종로 YMCA 건물 앞까지 줄이 이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연 배우의 회고에는 관객이 울고, 아리랑을 함께 부르고,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고 나옵니다. 무성영화라서 변사가 줄거리를 들려주었습니다. 관객 수와 흥행 수입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날의 물가도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지어내지 않는 것이 이 연재의 약속입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그날 이후의 모습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100년의 거울

항목 1926년 2026년
한글 기념일 제1회 가갸날, 11월 4일(음력 9월 29일) 한글날, 10월 9일(1946년부터)
민간 신문 동아·조선에 중외일보가 더해질 참 누구나 글을 펴내는 시대
영화 변사가 들려주는 무성영화 ‘아리랑’ ‘아리랑’은 지금도 이어지는 노래

백 년 전에는 우리말 기념일 하나를 만드는 데도 사람들이 모여야 했습니다. 그 모임이 오늘의 한글날로 이어졌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9일 – 첫 ‘가갸날’ 닷새 뒤, 중외일보 창간 엿새 앞둔 경성의 화요일
100년 전과 오늘을 견주어 보여 주는 비교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1월 10일 수요일입니다. 학교와 청년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엿새 뒤에는 중외일보가 첫 호를 냅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중외일보), 오마이뉴스·비즈한국(가갸날), 국가기록원 단성사 자료, 고려대 경성 문서목록, 영문 위키백과 ‘November 1926’·’1926 Imperial Conference’. 당일자 신문 원문과 날씨·물가는 확인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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