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1. 오프닝 – 10시 10분의 시간
1926년 11월 4일 목요일, 경성. 그날 동아일보 지면 맨 위에는 “大正十五年十一月四日(木曜日) 第二千二百四十號”라고 찍혀 있었다. 음력으로는 9월 29일이다. 이날 경성의 요릿집 식도원에서 우리 글자를 기리는 첫 잔치가 열렸다. 이름은 ‘가갸날’. 오늘날 한글날의 처음 모습이다. 이날의 날씨는 확인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4일 – 식도원에서 처음 열린 ‘가갸날’, 한글날의 첫걸음… 같은 날 시각장애인 한글 점자 ‘훈맹정음’도 반포](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81313-0nl3o9.png)
2. 그날의 경성
동아일보는 5면에 짧은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한글’, 본문과 기념일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부제는 “우리글을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 영원히 이날을 긔념하자”였다. 잔치는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함께 마련했다. 자리는 식도원이라는 요릿집이었고 수백 명이 모였다고 전한다. 당시로서는 큰 모임이었다.
날짜를 고른 까닭도 있다. 『세종실록』에 1446년(세종 28년)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으로 완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어연구회는 이 달의 마지막 날인 9월 29일을 반포한 날로 보았다. 그 날이 양력으로 1926년 11월 4일이었고, 훈민정음이 나온 지 여덟 번째 회갑(480년)이 되는 해였다. ‘가갸날’이라는 이름은 글자를 배울 때 외던 “가갸 거겨 고교”의 첫 두 글자에서 땄다. 행사 순서와 시각, 참석자 이름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4일 – 식도원에서 처음 열린 ‘가갸날’, 한글날의 첫걸음… 같은 날 시각장애인 한글 점자 ‘훈맹정음’도 반포](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81314-oa5rwj.png)
3. 경성과 한반도
같은 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글자 이야기가 있었다. 제생원 맹아부 교사 박두성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6점식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반포했다. 박두성은 1913년 제생원에서 시각장애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23년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꾸렸다. 연구 끝에 여러 안 가운데 하나를 골라 ‘훈맹정음’이라 이름 붙였다. 훈민정음의 뜻을 이어 ‘눈이 어두운 이를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완성 시점을 1929년으로 보는 자료도 있어 자료마다 말이 다르다.)
우리글을 지키려는 움직임은 경성에 머물지 않았다. 이듬해 조선어연구회는 잡지 『한글』을 펴냈고, ‘한글’이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다. 1928년 가갸날은 ‘한글날’로 이름을 바꿨다. 한편 10월 초 해외 신문은 조선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만주의 묵은 땅을 일구고 있다고 전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4일 – 식도원에서 처음 열린 ‘가갸날’, 한글날의 첫걸음… 같은 날 시각장애인 한글 점자 ‘훈맹정음’도 반포](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81317-ouyisy.png)
4. 그날의 세계
스톡홀름에서는 벨기에 왕세자 레오폴드와 스웨덴 공주 아스트리드의 혼례가 열렸다. 왕궁에서 시장 칼 린드하겐의 주례로 치른 민事 혼례였고, 교회 혼례는 11월 10일 브뤼셀에서 올렸다. 뉴욕에서는 열흘 전 세상을 떠난 마술사 후디니의 장례가 치러졌다. 43번가 엘크스 회관에서 열린 장례에 2천 명가량이 모였다고 하며, 퀸스의 묘지에 어머니 곁에 묻혔다. 워싱턴에서는 탄핵 재판을 앞둔 연방판사 조지 W. 잉글리시가 스스로 물러났다. 런던에서는 10월 19일 시작한 제국회의가 이어졌다. 자치령을 영국과 대등한 공동체로 보는 ‘밸푸어 선언’은 11월 15일에 채택된다. 소련에서는 10월 23일 트로츠키와 카메네프가 정치국에서 밀려났다. 중국에서는 장제스의 북벌군이 난창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11월은 숨 고르기였고 12월에 싸움이 다시 불붙었다는 기록이 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4일 – 식도원에서 처음 열린 ‘가갸날’, 한글날의 첫걸음… 같은 날 시각장애인 한글 점자 ‘훈맹정음’도 반포](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81319-5i7q5f.png)
5. 경성 24시
목요일의 경성은 노동과 일터의 하루였을 테지만, 이날의 임금과 쌀값은 확인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확인된 것은 두 곳의 풍경뿐이다. 한 곳은 사람들이 모여 우리글을 기린 식도원이다. 다른 한 곳은 제생원 맹아부 교실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학생들은 손끝으로 여섯 개의 점을 짚어 우리글을 읽는 법을 익혔다. 두 자리에서 오간 말은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누구에게나 건네려는 마음이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4일 – 식도원에서 처음 열린 ‘가갸날’, 한글날의 첫걸음… 같은 날 시각장애인 한글 점자 ‘훈맹정음’도 반포](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81320-uuxd2a.png)
6. 100년의 거울
| 항목 | 1926년 | 2026년 |
|---|---|---|
| 기념일 이름 | 가갸날 (1928년 한글날로 개명) | 한글날 |
| 날짜 | 음력 9월 29일 (양력 11월 4일) | 양력 10월 9일, 제정 100돌 |
| 기념 자리 | 요릿집 식도원, 수백 명 | 광화문광장 등 전국 행사 |
| 한글 점자 | 훈맹정음 반포 | 11월 4일은 법정기념일 ‘한글 점자의 날'(2020년 점자법 개정) |
100년 전에는 글자 하나를 기리는 일도 요릿집 한 칸을 빌려 해야 했다. 지금은 국경일이 되었고, 눈으로 읽지 못하는 이를 위한 글자도 법으로 기념일을 얻었다. 박두성의 여섯 점이 전한 뜻이 이어진 셈이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4일 – 식도원에서 처음 열린 ‘가갸날’, 한글날의 첫걸음… 같은 날 시각장애인 한글 점자 ‘훈맹정음’도 반포](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81322-zfzmsv.png)
7.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926년 11월 5일 금요일이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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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 신라 편] 제22화: 석굴암 – 천년의 미소](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5093305-90zfdo-768x432.png)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5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튿날, 한글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금요일](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5041944-mkpip1-768x512.png)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2일 – 가갸날을 이틀 앞둔 경성, 바다 건너 미국은 중간선거](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33932-shqlij-768x432.png)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3일 – 가갸날 하루 전, 한글을 기리는 첫 잔치를 앞둔 경성](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4031645-ywwzyk-768x512.png)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1일 – 가갸날을 사흘 앞둔 경성, 마술사 후디니의 죽음이 세계 신문 1면에](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2026/11/kt20261102005017-afccsi-768x51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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