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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8일 일요일 00:20:59 KST 전체기사 공지 로그인 회원가입 로그인 한국어 ENG Deutsch 日本語 中文

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기사입력 기사번호 6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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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 · 오전판

1926년 11월 6일 토요일 · 오전 10시 10분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프닝 · 10시 10분의 시간

1926년 11월 6일, 토요일입니다. 경성에는 이틀 전 처음 열린 ‘가갸날’ 잔치의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의 날씨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씨는 적지 않습니다. 대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올해 여름, 6·10 만세 운동으로 학생들이 거리에 나섰고, 이 해 가을에는 우리 글을 기리는 날이 처음 생겼습니다. 말과 글을 지키려는 마음이 이 토요일에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100년 전 오늘 1926-11-06 당시의 장면을 재현한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그날의 경성

이 글의 날짜는 11월 6일이지만, 이날 당일의 동아일보·조선일보 지면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일 기사를 지어내지 않고,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을 전합니다.

11월 4일은 음력 9월 29일이었습니다.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가 신민사와 함께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리는 모임을 열었고, 이름을 ‘가갸날’이라 붙였습니다. 한글 첫머리 소리인 ‘가, 갸’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모임 장소는 종로의 요릿집 식도원으로 전해집니다.

동아일보는 11월 4일자 5면에 ‘한글’이라는 짧은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가 가갸날을 다룬 첫 보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면 맨 위에는 “大正十五年十一月四日(木曜日) 第二千二百四十號”라고 일본 연호가 먼저 찍혀 있었습니다. 우리 글을 기리는 소식이 일본 연호 아래에 실린 것이 그 시절 모습입니다.

같은 날 송암 박두성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대목은 몇몇 자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그날의 사건 현장 분위기를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경성과 한반도

이 해 4월 순종이 세상을 떠났고, 6월 10일 장례일에는 중앙고보와 연희전문 학생들이 앞장서 경성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일제는 처음에 600여 명 학생을 모두 붙잡아 가둘 방침을 세웠지만,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11명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총칼로 막힌 길 옆에서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말과 글을 가꾸는 일입니다. 가갸날은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우리말을 지키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날 이후 전국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그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그날의 세계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내무장관 자리를 다시 맡았다는 소식이 11월 초에 나왔습니다. 9월과 10월 말에 암살 시도가 있었던 뒤입니다. 사흘 뒤인 11월 9일에는 야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잃고, 야당 활동이 금지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영국에서는 석탄 광부 직장폐쇄가 일곱 달째로 접어들었고, 정부와 광부 연맹이 다시 마주 앉았습니다. 이 소식은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지 못해 ‘이 무렵’의 일로만 적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그날의 거리와 건물 풍경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경성 24시 · 토요일의 문화

토요일은 문화와 예술을 살펴보는 날입니다. 그 시절 경성 종로는 서점과 요릿집, 신문사가 모여 있던 거리였습니다. 가갸날 모임이 요릿집에서 열린 것도 이런 거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번듯한 강당 하나 마음대로 빌리기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이날 극장에 무슨 영화가 걸렸는지, 장터 물가가 얼마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추정으로 채우지 않겠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그날 이후의 모습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100년의 거울

항목 1926년 2026년
한글을 기리는 날 처음 ‘가갸날’로 열림 (480주년) 한글날,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기념 장소 종로의 요릿집 식도원 전국 곳곳의 공식 행사
이름 가갸날 (1928년에 ‘한글날’로 바뀜) 한글날
신문 날짜 표기 일본 연호 ‘大正十五年’이 먼저 서기 연도

백 년 전에는 요릿집 한 칸에서 시작한 모임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글이 온 나라의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작은 모임의 약속이 백 년 동안 이어진 셈입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6일 – 첫 ‘가갸날’이 지나간 이틀 뒤, 한글을 기리기 시작한 경성의 토요일
100년 전과 오늘을 견주어 보여 주는 비교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일요일, 한 주를 돌아보는 날입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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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다음뉴스 「백 년 전, 한글로 찍힌 ‘가갸날’ 첫 보도」, 국가기록원 한글정책 연표, 위키백과 「6·10 만세운동」·「November 1926」. 당일(11월 6일) 신문 지면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THE KOREAN TODAY · 100년 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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