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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7일 토요일 15:51:39 KST 전체기사 공지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Deutsch 日本語 中文

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기사입력 기사번호 6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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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 · 오전판

1926년 11월 7일 일요일 · 경성
10시 10분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프닝 · 10시 10분의 경성

1926년 11월 7일 일요일. 절기로는 입동 무렵, 경성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이날 날씨를 적은 기록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날씨는 말하지 않는다. 확인되는 것은 사흘 전 이 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가 처음으로 ‘가갸날’을 기렸다. 그 여운 속에 맞은 첫 일요일이다.

※ 11월 7일자 신문 지면은 이번 조사에서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아래는 날짜가 확인된 사실만 이어 쓴 것이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100년 전 오늘 1926-11-07 당시의 장면을 재현한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그날의 경성

이날 하루만 짚은 기사는 가려내지 못했다. 대신 이 무렵 경성을 채운 이야기는 분명하다. 11월 4일, 요릿집 식도원에 지식인 100여 명이 모였다. 조선어연구회와 잡지 『신민』을 내는 신민사가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음력 9월 29일을 기준 삼아 양력 11월 4일로 잡았고,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동아일보는 11월 4일 5면에 이를 짧게 알렸다. 같은 날 시각장애인용 한글 점자 ‘훈맹정음’이 발표됐다고 전하는 자료도 있다.

가갸날은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꾼다. 일요일의 경성은 아직 그 이름이 낯선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추정이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그날의 사건 현장 분위기를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경성과 한반도

한 달 남짓 전인 10월 1일,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막을 올렸다. 개봉 뒤 여러 극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주제가 ‘아리랑’은 최초의 영화 주제가이자 최초의 금지곡으로 기록된다. 6월에는 순종의 장례일에 맞춰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한 자료에 따르면 붙잡힌 사람이 1,000여 명이었지만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11명이었다.

신문 시장도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협이 9월 18일 시대일보의 판권을 넘겨받았고, 8일 뒤인 11월 15일 ‘중외일보’라는 이름으로 창간호를 낸다.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이어 세 번째 민간 신문이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그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그날의 세계

이날 그리스에서는 총선거가 치러졌다. 자유당(Liberal Union)이 286석 가운데 108석으로 제1당이 됐지만 과반은 얻지 못했다. 비례대표제로 치른 첫 선거였다. 런던에서는 10월 19일부터 제국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영국과 자치령이 서로 대등하다는 ‘밸푸어 선언’이 11월 15일 채택된다. 중국에서는 7월에 시작된 장제스의 북벌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련에서는 10월에 트로츠키가 정치국에서 밀려났다. 일본에서는 다이쇼 천황의 병으로 황태자 히로히토가 1921년부터 섭정을 맡고 있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그날의 거리와 건물 풍경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경성 24시

일요일의 하루를 그린 기록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하루를 지어내지 않는다. 확인되는 장면은 이 정도다. 신문 광고와 극장 간판이 거리에 나붙었고, 단성사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아침나절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가갸날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짐작이다. 물가와 날씨는 이날 자료가 없어 적지 않는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그날 이후의 모습을 그린 보조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100년의 거울

일요일에는 한 주를 돌아본다. 사흘 전의 가갸날과 오늘의 한글날을 견주어 보자.

항목 1926년 2026년
이름 가갸날 (1928년 한글날로 개칭) 한글날
기념 방식 요릿집에 100여 명이 모인 기념식 해마다 10월 9일, 공휴일
의미 반포 480돌 가갸날 100주년 (올해 기사 다수)
민간 한글 신문 동아·조선, 11월 15일 중외일보 창간 예정 —

한글날은 한동안 공휴일에서 빠졌다가 2013년 다시 공휴일이 됐다. 100년 전 요릿집에 모인 100여 명의 마음이 지금의 쉬는 날로 이어졌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1월 7일 – 첫 ‘가갸날’ 사흘 뒤 일요일, 중외일보 창간을 여드레 앞둔 경성
100년 전과 오늘을 견주어 보여 주는 비교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926년 11월 8일 월요일.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출처: 동아일보 1926.11.4 5면 보도(2차 인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중외일보), 위키백과·일반 연표(그리스 총선, 제국회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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