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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진 시인의 「모래알 세상」

기사입력 기사번호 61499
문창진 시인의 「모래알 세상」
문창진 시인의 「모래알 세상」

빠르게 달리는 KTX 열차 안, 13호차에 탄 56명의 승객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지만 객실 안에는 대화 대신 침묵이 흐른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사용한다. 몸은 가까이 있지만 서로의 삶에는 닿지 않는 풍경이다.

문창진 시인의 「모래알 세상」은 이러한 일상적인 장면에서 출발해 현대인의 관계와 고독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지금 이 시간
13호차 승객 56명이
공기를 나누어 마신다”

시인은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낯선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 사실만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한 배를 탔지만 식구는 아니고
시공간을 공유하지만
동반자는 아니고”

한 배를 탔다는 표현은 흔히 공동의 운명이나 연대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익숙한 의미를 뒤집는다. 같은 열차를 타고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서로의 삶을 나누는 동반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낯선 승객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다. 시인은 타인의 무관심을 일방적으로 탓하지 않는다. 자신 역시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이처럼 자신과 타인을 같은 위치에 놓으면서 작품은 단순한 세태 비판을 넘어 인간관계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몸이 한 곳에 모여있어도
마음은 나눌 수 없는
그릇에 담긴 모래알 세상”

작품의 중심 비유인 ‘모래알’은 현대인의 존재 방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수많은 모래알이 하나의 그릇에 담겨 있지만 서로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열차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을 수는 있어도 그들의 마음까지 이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고독은 반드시 불행이나 절망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인은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공간을 오히려 ‘아늑한 시공간’이라고 표현한다. 낯선 사람들 사이의 무관심이 외로움을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간섭에서 벗어난 편안함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이 담겨 있다.

마지막 두 행은 작품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KTX는 달리느라 말이 없고
모래알인 나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열차의 침묵과 화자의 침묵이 나란히 놓인다.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열차도, 그 안에 앉아 있는 화자도 말이 없다. 특히 자신을 ‘모래알’이라고 부르는 마지막 표현은 앞서 관찰하던 타인들의 모습 속에 화자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현대인이 서로에게 무관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저 열차 안의 풍경을 보여 주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조용히 묻는다. 절제된 진술과 일상적인 언어가 오히려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과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공간을 나누는 일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다르다. 문창진 시인의 「모래알 세상」은 그 익숙하면서도 쉽게 지나치는 차이를 한 편의 시로 드러낸다.

한 그릇에 담겨 있어도 끝내 저마다의 모양을 지닌 모래알처럼, 우리 역시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 시가 남기는 여운은 그 고독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함께 있다는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시 · 작가 문창진 · 올린이 장시백 · 작가의 동의를 받아 실음 · AI 부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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