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집은 돌봄의 또 다른 손이 됩니다
지난번에는 넘어지지 않는 집, 그러니까 조명과 문턱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계단 손잡이를 단단히 고정하고 미끄럼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일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런데 돌봄을 오래 하다 보면 안전이란 바닥과 계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물건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급할 때 누구에게 어떻게 연락하는지, 불과 약은 어떻게 관리되는지까지 모두 집의 안전에 속합니다.
부모님을 돌보던 시절, 저 역시 ‘내가 더 부지런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던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손과 눈은 하루 스물네 시간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잠깐 장을 보러 나간 사이, 혹은 밤에 깊이 잠든 사이에도 집은 부모님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집이 대신 지켜 줄 수 있는 부분을 늘려 두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지혜로운 돌봄입니다.
체크리스트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집을 한 바퀴 천천히 걸으며 부모님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부모님이 하루 동안 가장 많이 머무는 자리, 가장 자주 손을 뻗는 곳, 가장 자주 오가는 길을 떠올려 보세요. 그 세 곳만 정돈되어도 집은 한결 든든한 돌봄의 손이 되어 줍니다.
손 닿는 곳에, 길은 비워 두기
나이가 들면 몸을 굽히거나 높은 곳으로 팔을 뻗는 동작이 점점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우리 집 살림은 대개 젊은 시절 기준으로 자리 잡혀 있어서, 자주 쓰는 그릇이 찬장 맨 위에 있거나 즐겨 입는 옷이 서랍 맨 아래 칸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부탁하기 미안해서 의자를 딛고 올라가거나 무리하게 허리를 숙이기도 합니다. 물건의 자리가 몸에 맞지 않으면, 그 불편함은 결국 위험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돌봄의 하루를 떠올려 보면 익숙한 장면이 있습니다. 택배 상자를 현관에 잠시 두었다가 며칠째 그대로이고, 거실 바닥에는 리모컨 줄과 휴대전화 충전선이 엉켜 있습니다. 부모님 방 앞 복도에는 계절이 지난 이불 보따리가 놓여 있지요. 하나하나는 사소해 보여도, 부모님이 밤중에 화장실을 가는 길에서는 모두 걸림돌이 됩니다.
그래서 정리의 기준을 두 가지로 잡아 보시길 권합니다. 첫째, 자주 쓰는 물건은 허리와 어깨 사이 높이에 둡니다. 둘째, 부모님이 매일 오가는 길, 특히 침대에서 화장실까지의 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습니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은 상자에 담아 이름을 적고 한쪽에 모아 두면 되니, 마음의 부담을 덜고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급할 때 떠오르지 않는 번호를 위해
위급한 순간에는 평소 잘 알던 것도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젊은 사람도 그런데, 부모님은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속 연락처를 찾으려 화면을 몇 번씩 넘기다 보면 손이 떨리고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비상연락은 기억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곳에 맡겨 두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가정에서 연락처는 자녀의 휴대전화에만 저장되어 있습니다. 부모님 혼자 계실 때 몸이 갑자기 불편해지거나, 반대로 돌보는 내가 집에서 쓰러지는 상황은 누구도 미리 상상하고 싶지 않지요. 하지만 그런 순간을 떠올려 보는 것 자체가 가족을 지키는 준비가 됩니다. 구급대원이나 이웃이 집에 들어왔을 때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전화기 옆과 냉장고 문에 큰 글씨로 비상연락표를 붙여 두세요. 119, 가까운 가족 두세 명, 다니는 병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름과 알레르기 여부도 함께 적어 두면 좋습니다. 부모님 휴대전화에는 단축번호를 설정하고, 직접 한두 번 눌러 보시게 연습하면 막상 필요할 때 손이 먼저 기억해 줄 수 있습니다.
불과 약, 조용한 위험을 살피는 일
주방의 불과 서랍 속 약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곳입니다. 오랜 세월 살림을 해 온 부모님은 여전히 주방에 서고 싶어 하시고, 그 마음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냄비를 올려 두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 깜빡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습니다. 약도 마찬가지여서,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 헷갈려 한 번 더 드시거나 거르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돌보는 사람은 이런 순간에 ‘이제 주방에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빼앗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위험을 줄이면서도 부모님의 자리를 지켜 드리는 방법을 함께 찾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안전과 존엄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가스레인지에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꺼지는 타이머형 차단기를 고려해 보시고, 조리할 때는 주방 타이머를 함께 쓰는 습관을 들이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약은 요일과 아침·점심·저녁이 나뉜 약통에 일주일 치를 미리 나눠 담아 두면, 드신 칸과 남은 칸이 한눈에 보입니다. 오래된 약이나 더 이상 드시지 않는 약은 약국에 가져가 정리하고, 약 서랍은 한 곳으로 모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안전한 집은 돌보는 사람도 쉬게 합니다
집을 정돈하는 일은 결국 부모님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물건의 자리가 정해지고 연락처가 눈에 보이는 곳에 붙어 있으면, 돌보는 사람의 머릿속도 조금 가벼워집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이 ‘이건 준비해 두었어’라는 작은 안도로 바뀌는 것이지요. 그 안도감이 쌓이면 잠시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갈 용기도 생깁니다.
돌봄을 하다 보면 집 안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 방, 주방, 거실이 모두 돌봄의 현장이 되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정리정돈을 하는 김에, 나를 위한 작은 자리 하나를 마련해 두시길 권합니다. 창가 의자 하나, 좋아하는 찻잔 하나, 은은한 향이 담긴 작은 병 하나면 충분합니다.
체크리스트는 한 번에 다 끝내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주에는 복도 하나, 다음 주에는 비상연락표 하나, 그렇게 천천히 해 나가면 됩니다. 완벽한 집이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안심되는 집이면 충분합니다.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바로: 부모님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직접 천천히 걸어 보세요. 1) 침대에 앉아 부모님 눈높이로 길을 바라봅니다. 2) 걸어가며 발에 걸리는 물건이나 전선이 있는지 살핍니다. 3) 보이는 것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한쪽으로 치웁니다. 부모님이 매일 오가는 길을 직접 걸어 보면, 평소 보이지 않던 걸림돌이 눈에 들어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한 걸음 더: 큰 글씨 비상연락표를 만들어 보세요. 1) A4 용지에 굵은 펜으로 119, 가족 연락처 두세 개, 다니는 병원 번호를 적습니다. 2) 아래쪽에 드시는 약 이름과 알레르기 여부를 적습니다. 3) 한 장은 전화기 옆에, 한 장은 냉장고 문에 붙입니다. 4) 부모님과 함께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봅니다. 함께 읽어 두면 급할 때 어디를 보면 되는지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여유가 될 때: 나만의 쉼 자리를 만들어 보세요. 1) 집 안에서 햇빛이 드는 의자 하나를 정합니다. 2) 그 옆에 좋아하는 찻잔과 라벤더나 오렌지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향을 둡니다. 3) 하루 한 번, 오후빛이 들 때 그 자리에 앉아 어깨를 크게 세 번 돌리고 깊게 숨을 세 번 쉽니다. 향으로 기분을 다독이며 잠시 멈추는 시간이 돌보는 마음을 쉬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가스 차단기나 안전 손잡이 같은 설비는 혼자 설치하기보다 전문 업체나 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향은 부모님과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만큼만 은은하게 사용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바로 환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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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테라피스트·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병원동행매니저 자격을 가진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을 직접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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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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