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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신라

[역사는 살아있다 – 신라 편] 제24화: 설총과 강수 – 신라의 학문

[역사는 살아있다 - 신라 편] 제24화: 설총과 강수 - 신라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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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신라 편

제24화: 설총과 강수 – 신라의 학문

우리말을 적을 글자가 없던 시대, 사람들은 남의 글자를 빌려 제 말을 적었다. 그 지혜의 한가운데에 설총이 서 있다.

흔히 설총을 “이두를 만든 사람”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사료와 학계는 조금 다르게 말한다. 설총 이전에도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방식은 이미 쓰이고 있었고, 설총은 이를 체계화하고 학문의 언어로 끌어올린 인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원효의 아들로 태어나 유학자로 이름을 남긴 설총, 그리고 신분의 벽 앞에서 붓 한 자루로 삼국통일의 외교전을 뒷받침한 강수. 두 사람은 칼이 아니라 글이 나라를 움직이던 신라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렇다면 신라는 어떻게 지식인을 길러냈고, 그들은 왕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오늘 우리가 쓰는 문자 생활과 교육 제도의 뿌리를 따라가 본다.

◆ 시대의 풍경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무너지고 신라는 당과의 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나라에는 칼보다 붓을 쥘 사람이 필요해졌다. 넓어진 영토를 다스릴 관료, 당과 주고받을 외교문서, 왕권을 뒷받침할 이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문왕은 681년 즉위해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다졌고, 682년 유학 교육기관인 국학(國學)을 세웠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귀족 자제가 9년 동안 《논어》《효경》 등을 배우는 곳이었다. 이어 원성왕 4년(788년)에는 경전 이해도를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 채용에 참고하는 독서삼품과가 시행되었다. 다만 골품제의 벽이 높아 실효는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설총은 성품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태어나면서부터 도술을 알았으며, 방언(方言)으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으니, 지금까지도 배우는 이들이 그를 높이 받든다.” (취지 요약)

– 출처: 《삼국사기》 열전 제6 설총조 (권46)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당나라는 고종 말기에서 측천무후 집권기(690년 국호를 주周로 바꿈)로 넘어가던 때였다. 경전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 과거제가 발전하며 신라 유학생들이 장안을 오갔다.

🗿 유럽/중동

비잔틴은 680~681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열었고, 우마이야 왕조는 7세기 말 아랍어를 행정 공용어로 삼았다. 문자가 곧 통치의 도구였다.

🌏 기타 지역

일본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노래를 적는 만요가나 방식으로 8세기 《만엽집》의 기반을 닦았다. 신라 향찰과 닮은 길이다. 영국의 베다(673~735년경)는 라틴어로 역사를 썼다.

신라 학문 제도의 연표

655년경
설총 출생(추정)
원효의 아들
682년
국학 설치
신문왕, 유학 교육
692년경
강수 사망
외교문서의 명필
788년
독서삼품과
원성왕, 관리 선발

한자의 소리(音)와 뜻(訓)을 빌려 우리말을 적다
이두 · 향찰 · 구결 – 한글 이전 천 년의 문자 생활

[이미지: 설총과 강수, 국학과 독서삼품과로 읽는 신라 학문의 연표]

⚔️ 그날의 현장

“초여름 저녁, 신문왕은 정사를 마치고 한가로이 앉아 설총에게 말했다. ‘오늘은 비가 그치고 바람이 선선하니, 재미난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삼국사기》가 전하는 장면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설총은 꽃의 왕 모란 앞에 아름다운 장미와 허름한 차림의 할미꽃이 차례로 나아와 간언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끝나자 왕은 낯빛을 고치고 말했다. 그 글을 적어 두어 임금 된 자의 경계로 삼겠노라고.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화왕계는 직설 대신 우화로 왕을 깨우친 글이다. 아첨하는 장미(간신)와 쓴소리를 하는 할미꽃(충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란(왕)의 모습은 신문왕이 귀족 세력과 새 관료층 사이에서 개혁을 밀고 가던 현실과 겹친다. 이 글은 후대 《동문선》에 「풍왕서」라는 이름으로도 실려 전한다. 설총은 6두품 출신으로 한림에 이르렀다고 전하며, 이는 6두품 지식인이 왕권과 손잡고 정치 무대에 오르던 흐름을 보여 준다.

강수는 더욱 극적이다. 그는 스스로 임나가량(任那加良) 출신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현전 사서에 임나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드문 기록이다. 불교를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세속의 사람으로서 유학을 배우겠다”고 답했다고 전한다. 무열왕과 문무왕 대에 당과 주고받는 외교문서를 맡아 막힘없이 풀어냈고, 이는 나당 관계에서 신라의 입지를 지키는 힘이 되었다. 신분이 높지 않았던 그가 문장 하나로 대접받았다는 사실은 신라 사회가 실력 있는 글쟁이를 필요로 했음을 보여 준다.

이두와 향찰의 증거는 금석문과 향가에 있다. 진평왕 때의 「서동요」, 선덕여왕 때의 「풍요」처럼 설총보다 앞선 시기의 작품이 향찰로 전해지고, 6세기 신라 금석문에도 우리말 어순으로 쓴 한문이 보인다. 따라서 “설총 창제”는 정확한 표현이라기보다 “설총이 집대성하고 학문적 권위를 부여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안전하다. 국학과 독서삼품과는 이런 문자 능력을 제도로 키우려는 국가의 시도였다.

시대

7세기 후반~8세기 말

핵심 인물

설총, 강수, 신문왕

핵심 사건

이두 정리, 화왕계, 국학 설치

영향

문자 생활과 관료 선발의 기초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설총은 이미 쓰이던 차자 표기를 정리·집대성한 인물이며, 독서삼품과는 국학을 보완한 관리 선발 장치였지만 골품제의 한계로 실효가 제한적이었다.

대안적 견해

독서삼품과를 왕권 강화의 핵심 정책으로 높이 평가하는 연구도 있다. 강수의 임나가량 출신을 두고는 대가야·금관가야 연관설과 가야와 무관하다는 견해가 맞선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남의 글자를 빌려 내 말을 적던 지혜는 천 년 뒤 훈민정음(1443년 창제, 1446년 반포)이라는 독자적 문자로 이어진다. 이두는 불편했지만, “내 말을 글로 적고 싶다”는 욕구가 끊이지 않았기에 한글이 나올 토양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AI가 쓴 글과 사람이 쓴 글이 뒤섞이는 시대를 산다. 도구가 바뀌어도 설총의 화왕계가 던지는 질문은 같다. 듣기 좋은 말과 쓴소리 중 무엇을 곁에 둘 것인가. 그리고 신분이 아니라 실력으로 사람을 쓰려 했던 강수의 사례는, 공정한 선발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구분 신라 시대 현재
문자 생활 한자를 빌린 이두·향찰 한글과 디지털 입력
교육·선발 국학, 독서삼품과(골품 제약) 공교육, 공개 경쟁 시험
지식 사회 6두품 지식인, 우화로 간언 전문가 집단, 공론장과 미디어

빌린 글자에서 우리 글자로

한자
소리(音)와 뜻(訓)
을 빌리다

이두 · 향찰
설총이 정리
관청 문서·향가

훈민정음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

오늘의 한국
한글 · 공교육 · 공개 경쟁 시험 · 전문가 사회
“쓴소리를 가까이 두라”는 화왕계의 질문

[이미지: 신라의 차자 표기에서 한글과 현대 지식 사회로 이어지는 길]

📚 더 깊이 알아보기

  • 경주 월지(안압지)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귀족과 관료 문화를 보여 주는 목간·유물을 만날 수 있다.
  • 설총이 “방언으로 구경을 읽었다”는 기록은 한문 경전을 우리말 구조로 풀어 읽는 구결·훈독 전통과 이어진다.
  • 참고: 《삼국사기》 권46 열전 설총·강수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학」「독서삼품과」 항목.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설총은 글자를 빌려 말을 살렸고, 강수는 붓으로 나라의 길을 열었다. 학문이란 결국 내 말로 생각하고, 듣기 싫은 말도 들으며, 실력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다.

“꽃의 왕 곁에 할미꽃이 있었듯, 우리 곁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전 편

제23화: 원효와 의상 – 신라 불교의 두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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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장보고 – 해상왕국의 꿈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신라 편 (총 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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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국학#설총#이두#화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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