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 오전판
1926년 10월 7일 목요일 · 경성 · 10시 10분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0시 10분의 시간
1926년 10월 7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이날 하루만 콕 집어 적은 신문 기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날씨와 물가도 확인된 기록이 없어 적지 않습니다. 대신 이 무렵 경성을 둘러싼 굵직한 사실들은 분명합니다. 엿새 전인 10월 1일, 경복궁 안에 지은 조선총독부 새 청사의 낙성식이 열렸습니다. 같은 날 단성사에서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막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큰 사건 대신 그 뒤를 이은 평범한 목요일을 살펴봅니다. 기사 유형은 B타입, 목요일 주제는 노동과 경제입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7일 – 경복궁 앞 새 총독부 청사 낙성 엿새째, 우무한의 포위전과 아리랑 열풍 속 경성의 목요일](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0715415285.jpg)
그날의 경성
경복궁 앞에는 10여 년 공사 끝에 선 거대한 석조 청사가 있었습니다. 1916년 지진제를 올리며 시작한 공사는 1925년 12월에 마무리됐고, 1926년 1월 4일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며, 10월 1일에 낙성식을 치렀습니다. 들어간 돈은 700만 엔가량으로 전해집니다(국가기록원 주제별 총설). 이 건물을 올리느라 경복궁의 흥례문과 회랑이 헐렸고 광화문은 동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런 큰 공사에는 석재를 나르고 다듬는 일꾼, 벽돌을 쌓는 품팔이꾼의 손이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다만 이날 노동 현장의 구체적인 숫자나 임금은 확인된 자료가 없어 적지 않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7일 – 경복궁 앞 새 총독부 청사 낙성 엿새째, 우무한의 포위전과 아리랑 열풍 속 경성의 목요일](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0715422460.jpg)
경성과 한반도
〈아리랑〉은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했습니다. 나운규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과 주연을 맡은 무성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이 목 놓아 울며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한국 영화 최초의 큰 흥행이 됐습니다. 총독부 청사 낙성식 날짜에 맞춰 개봉됐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개봉 엿새째인 이날에도 종로의 극장 앞이 붐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영화가 이후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는 점은 여러 기록이 같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7일 – 경복궁 앞 새 총독부 청사 낙성 엿새째, 우무한의 포위전과 아리랑 열풍 속 경성의 목요일](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0715425033.jpg)
그날의 세계
중국에서는 국민혁命군의 북벌이 한창이었습니다. 한커우와 한양은 빠르게 넘어갔지만 우창성은 한 달 넘게 버텼고, 10월 10일에야 무너졌습니다. 그러니 10월 7일은 성이 포위된 채 마지막 버티기가 이어지던 때입니다. 이 소식은 곧 만주와 상하이의 조선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였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날 파시스트 대평의회가 만들어졌다고 연표에 적혀 있습니다. 다만 이 항목은 연표 하나에 의존한 것이라 교차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7일 – 경복궁 앞 새 총독부 청사 낙성 엿새째, 우무한의 포위전과 아리랑 열풍 속 경성의 목요일](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0715421723.jpg)
경성 24시
목요일은 일하는 사람들의 날입니다. 이날 경성 사람들의 구체적인 하루는 기록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상상으로 채우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거리의 풍경입니다. 한쪽에는 새로 선 거대한 총독부 청사가, 다른 쪽에는 〈아리랑〉을 보러 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도시 안에서 권력의 건물과 서민의 눈물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7일 – 경복궁 앞 새 총독부 청사 낙성 엿새째, 우무한의 포위전과 아리랑 열풍 속 경성의 목요일](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0715438477.jpg)
100년의 거울
| 항목 | 1926년 | 2026년 |
|---|---|---|
| 경복궁 앞 | 조선총독부 청사가 막 낙성 | 광화문이 제자리를 찾은 광장 |
| 대중 오락 | 무성영화 〈아리랑〉 | 전 세계가 보는 K-콘텐츠 |
| 일하는 사람들 | 임금 자료 확인 안 됨 | 노동법과 최저임금 |
총독부 청사는 훗날 철거됐고(1990년대), 광화문은 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세기 사이에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7일 – 경복궁 앞 새 총독부 청사 낙성 엿새째, 우무한의 포위전과 아리랑 열풍 속 경성의 목요일](https://www.thekorean.today/wp-content/uploads/ins/imgdata/smilestory_kr/202610/2026100715438405.jpg)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926년 10월 8일 금요일입니다. 우창성이 무너지기까지 이틀이 남았습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출처: 국가기록원 주제별 총설(조선총독부 청사), 〈아리랑〉 개봉 관련 보도·자료, 북벌 관련 학술 개요. 10월 7일자 당일 신문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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