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서남단에 자리한 구로는 단순한 생활권을 넘어 서울 남서부의 길목이자 시대 변화의 흐름을 가장 먼저 받아낸 지역으로 평가된다. 구로구청은 구로를 김포공항과 인천항, 서해안고속도로와 인접한 서울의 남서관문이자 경부·경인선 철도와 지하철 1·2·7호선, 국도가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로 소개하고 있다. 오늘의 구로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지역이 지닌 지리적 의미를 읽어야 한다. 사람과 물류가 모이고 흩어지는 관문이라는 조건은 훗날 구로가 산업도시로 성장하고, 다시 첨단 디지털 산업의 거점으로 변모하는 바탕이 됐다.
구로의 역사는 행정구역의 변천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구로구청 연혁에 따르면 지금의 구로 지역은 1949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 이후 영등포구 관할 아래 놓였고, 당시에는 구로리로 불리다가 1950년 3월부터 ‘동’ 체계로 바뀌었다. 이어 1963년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으로 현재 대부분의 구로 지역이 영등포구에 편입되며 본격적인 도시 편입의 길로 들어섰다. 이 시기의 변화는 단순한 행정개편을 넘어 농촌적 공간이 도시적 성격을 입기 시작한 첫 전환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정적인 전환은 1980년 4월 1일 찾아왔다. 구로구는 대통령령 제9630호에 따라 영등포구에서 분리되어 새롭게 출범했고, 그 중심에는 구로동의 한국수출산업공단이 있었다. 구로구청은 이 지역이 1960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이른바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산업화의 상징적 모델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수많은 노동과 기술, 생산과 수출이 집약됐던 이 공간은 산업화 시대 한국 경제의 현장을 고스란히 품은 장소였다. 구로라는 지명 안에는 단지 행정구역의 이름이 아니라, 나라의 성장통과 도약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구로의 역사는 공단에서 멈추지 않았다. 구로구청 지역특성 자료에 따르면 구로구 전체 면적의 34.6%인 6.97㎢가 준공업지역이며, 오랫동안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역할을 해왔다. 이후 제조업 중심의 구로공단은 2000년 11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꾸었고, 벤처기업과 지식정보산업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구로는 과거의 생산기지라는 틀을 넘어 기술과 정보, 유통과 교통이 함께 움직이는 복합도시로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화의 심장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디지털 혁신의 무대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로의 역사는 세 갈래의 시간으로 읽힌다. 첫째는 서울 변두리의 생활공간이던 시절이고, 둘째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친 공단의 시대이며, 셋째는 첨단산업과 도시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의 시대다. 구로는 늘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 변화는 언제나 사람의 이동과 노동, 삶의 방식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구로의 역사는 행정의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공장으로 출근하던 이들의 발걸음도 있고, 전철을 타고 디지털단지로 향하는 오늘의 청년들도 있으며, 오래된 주거지와 새로 들어선 산업 공간이 한 동네 안에서 공존하는 현재의 풍경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구로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실험하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코리안투데이가 앞으로 연재할 구로 이야기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구로는 단지 서울의 한 자치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한 지역 안에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오래된 시간의 결을 간직하면서도 끊임없이 새 얼굴을 만들어가는 도시, 바로 그 이름이 구로다.